[담화 전문] 2018년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2018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이 지난 11월 24일 교황청 공보실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됐다.

담화문의 제목은 ‘이민자와 난민: 평화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며, 본문은 6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서두에서 교황은 진심으로 평화를 기원하면서, 전쟁·기아·박해를 피해 떠나온 이들을 따뜻이 맞이하도록 선의의 사람들을 초대했다.

아래는 2018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며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 전문:


                              이민자와 난민: 평화를 찾아 나선 사람들

 

1. 진심으로 평화를 기원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과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빕니다! 성탄절 밤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선포한 평화는[1] 모든 이들과 모든 민족, 특히 평화가 없는 곳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강한 열망입니다. 저는 그들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있으며, 그들 가운데 2250만 명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합니다. 저의 사랑하는 전임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선 남녀노소”라고 표현하셨습니다.[2] 그들은 그 평화를 찾기 위해 기꺼이 길고 위험한 여행에 목숨을 걸고,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그들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만납니다.

전쟁과 굶주림에서 도망치거나, 차별과 박해, 빈곤과 환경 파괴로 고향을 떠나게 된 모든 이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기꺼이 맞아들입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에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다시 안전한 집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 많은 것이 우선 해결돼야 합니다. 타인을 환대하는 것은 구체적인 헌신, 도움과 친선의 네트워크, 신중함과 공감, 그리고 언제나 부족한 자원은 말할 것도 없고, 현존하는 많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새롭고 복잡한 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를 요구합니다. 정부 지도자들은 신중함을 실천하면서, “올바로 이해된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한계 내에서 타국 이주자를 받아들일 의무”를 지닙니다. 또한, 그들을 환대하고, 육성하고, 보호하고, 통합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합니다.[3] 탑을 세우는 일을 시작하고 계산착오로 그것을 완료하지 못하는 성급한 건설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도자들은 이민자와 난민들이 합법적인 권리와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분명한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4]

 

2. 난민과 이민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베들레헴의 천사들이 평화를 선언한 이후 2천 년을 기념하는 대희년을 바라보시며, 점점 더 많은 수의 실향민들을 가리켜 20세기의 “끝없이 두려운 일련의 전쟁, 충돌, 대량 학살, 인종 청소의 결과”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새로운 세기는 실제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무력 충돌과 조직적인 폭력의 다른 형태가 계속해서 국내외의 사람들의 이동을 촉발시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도 이주합니다. 주로 “더 나은 삶을 원하며 ‘가망이 없는 미래의 절망감’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6] 그들은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 혹은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떠납니다. 이러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평화 안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언급했듯이, “환경 파괴로 인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이민자의 수가 비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7]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경로로 이주합니다. 하지만 자국에서 안전과 기회를 제공하지 않거나, 모든 법적 경로가 실용적이지 않거나, 막혀 있거나 너무 느리다면, 어떤 사람들은 필사적인 심정으로 평범하지 않은 경로를 택하기도 합니다.

많은 목적지 국가에서 국가 안보에 대한 위험을 비롯해 이민자와 난민을 환영하는 데 발생하는 많은 비용을 과도하게 지적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 이유로 평화를 구축하는 대신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폭력과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증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 존재의 안전을 고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깊게 관심을 둬야 할 문제입니다.[8]

국제사회의 모든 지표는 향후 세계적 이주가 계속될 것임을 나타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확신을 갖고 이번 일을 평화가 구축되는 기회로 바라보기를 요청합니다.

 

3. 관상의 시선으로

신앙의 지혜는 다음을 인식하면서 관상의 시선을 도모합니다. “이민자든 그들을 환영하는 현지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고, 교회의 사회교리가 가르치듯 모두 똑같이 보편적 목적을 지닌 지상의 재화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대와 나눔의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9] 이러한 말씀은 새로운 예루살렘의 성경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서 60장과 요한묵시록 21장이 묘사하는 한 도성의 성문은 각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으며, 사람들은 민족들의 보화와 보배를 그 도성으로 가져갑니다. 평화는 이들을 인도하는 지도자이며, 정의는 그 안에서 공존을 지배하는 원칙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관상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바라 봐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집과 거리와 광장에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신앙의 시선입니다. (...) 이 시선을 통해 연대, 형제애, 선, 진리, 정의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10] 다시 말해, 평화의 약속을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시선으로 이민자와 난민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들이 빈손으로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용기와 기술, 힘, 그리고 열망과 자국 문화의 보화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국가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원이 부족할지라도 이민자와 난민에게 문과 마음을 여는 전 세계 수많은 개인, 가족, 지역 사회의 독창성, 끈기, 희생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관상의 시선은 공익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분별력을 이끌어 내고, “올바로 이해된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한계 내에서” 환대의 정책을 추구하도록 권장해야 합니다.[11] 또한, 인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 각각에게 주어져야 할 복지와 필요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은 이미 평화의 싹이 트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민자와 난민의 존재에 관한 갈등으로 분열되고 양극화된 도시들은 평화의 장소로 바뀔 것입니다.

 

4. 네 가지 행동 지침

망명 신청자, 난민, 이민자, 인신매매 피해자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환대, 보호, 양육, 통합이라는 네 가지 행동 전략이 필요합니다.[12]

“환대”는 입국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를 확대하고, 더 이상 이민자와 실향민을 박해와 폭력에 마주한 국가로 밀어붙이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와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걱정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 줍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13]

“보호”는 망명과 안전을 찾아 실제 위험으로부터 도망친 이들의 불가침한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학대를 방지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노예화의 위험과 학대에 노출된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십니다.”[14]

“양육”은 이민자와 난민의 필수 인적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러 방법 가운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모든 수준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배양하고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거부하거나 맞서기보다 타인과 만나면서 대화의 정신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15]

끝으로 “통합”이란, 필수 인적 개발을 위한 유익한 협력 과정의 목적으로 난민과 이민자가 그들을 환영하는 지역 공동체의 삶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16]

 

5. 두 개의 국제 협약에 대한 제안

이러한 정신으로 2018년에는 유엔이 △안전하고 질서 정연하고 규칙적인 이주 △피난민 등 두 개의 국제 협약에 대한 초안을 만들고 승인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세계가 공동으로 서약함으로써, 이 협약은 정책 제안을 비롯해 실질적 조치를 위한 틀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평화 구축 과정을 진전시킬 모든 기회를 활용하도록 연민과 예지력과 용기에서 영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국제 정치에 요구되는 리얼리즘이 냉소주의나 무관심의 세계화에 굴복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대화와 조정은 국제 공동체의 필수적인 의무입니다. 국제 협력이 필요한 자금을 보장한다면, 국경 너머의 더 많은 난민이 덜 부유한 국가에서도 환영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의 이주사목국은 공공 정책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태도와 활동 안에서 이 네 가지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행동 지침을 발표했습니다.[17] 이 사목 행동 지침의 목적은 유엔 국제 협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가톨릭 교회의 관심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이 관심은 교회의 근원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오는 사목적 관심의 표시입니다.

 

6.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봅시다. “평화로운 세상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된다면, 피난민과 이민자의 공헌이 정당하게 평가된다면, 인류는 점점 더 보편적인 가족이 될 수 있고, 지구는 진정으로 ‘공동의 집’이 될 것입니다.”[18] 역사를 통틀어 많은 이들은 이러한 “꿈”을 믿어 왔으며, 그들의 업적은 이러한 세계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올해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성녀 선종 100주년을 기념합니다. 11월 13일에는 많은 교회 공동체가 카브리니 성녀를 기억합니다. 이민자 봉사에 헌신하고 수호성인이 된 이 놀라운 여성은 우리에게 형제 자매들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양육하고, 통합하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카브리니 성녀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빕니다.[19]

 

바티칸에서

2017년 11월 13일

이민자의 수호성인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성녀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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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카 2,14.

[2] 2012년 1월 15일 삼종기도.

[3] 성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06항.

[4] 루카 14,28-30.

[5] 200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3.

[6] 베네딕토 16세 교황, 2013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7] 25항 참조.

[8] 유럽 가톨릭 주교회의에 참가한 전국 이주사목 책임자들에게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2017.9.22.) 참조.

[9] 베네딕토 16세 교황, 2011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10]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Evangelii Gaudium), 71항.

[11] 성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06항.

[12]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13] 히브 13,2.

[14] 시편 146,9.

[15] 신명 10,18-19.

[16] 에페 2,19.

[17]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 이주사목국, “글로벌 콤팩트를 위한 20가지 행동 지침”과 “20가지 사목 행동 지침”, 로마, 2017년. 유엔 문서 A/72/528도 참고.

[18] 2004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19] 야고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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